[가이무] RPG GAIMSAGA The Beginning ~ 희망의 오렌지 上편 ~

SHT2017. 4. 1. 04:33


특수촬영물xRPG게임 합작 'QUESTOKU!' 합작에 참여했습니다.

퐁님이랑 페어로 오렌지+포도 조합으로!

같은 마을에서 자란 검사 오렌지와 궁수 포도가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로!


합작 주소는 여기: http://questoku.tistory.com/5

퐁님의 페어글: 





#01.

코우타! 언제까지 자고 있을 거니, 이제 일어나야지!

아키라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귓가를 때렸다. 저를 깨우는 누나의 목소리와 함께 얼굴 위를 따뜻하게 감싸는 하얀 햇빛이 그만 일어나라는 듯이 간질인다. 그러고 보니 오늘 새 아르바이트 면접이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천장이었다. 곱게 벽지가 발라져있을 천장이 어쩐지 낯설다. 잠시 시선을 데룩 굴려보자 시선 끝에 벽에 기대선 검집과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가죽옷 위에 걸쳐져있는 플레이트가 닿았다.

“…응?”

튕기듯 상체를 벌떡 일으키자, 창문에 어렴풋이 비치는 제 얼굴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제 손을 내려다보면 입고 있는 옷도 조금 다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라지. 허둥거리며 이불을 걷고 침대 아래로 발을 내려놓자 감색의 면바지가 나온다. 역시 본 적 없는 옷이다. 얼떨떨한 기분에 잠시 행동이 굳어있는 사이 문이 벌컥 열렸다.

“어휴, 정말! 어제 반도 씨가 일찍 와야 한다고 했잖아, 이제 일어……뭐하니?”

“어어…?”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여전히 코우타가 사랑하는 누나였지만 역시 코우타와 마찬가지로 차림이 낯설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애니메이션에서 나올 법한 원피스를 입은 아키라가 영 시원찮은 반응을 보이는 코우타를 살짝 눈썹을 찡그린 채로 바라보고 있다.

“아무튼. 일어났으면 이제 어서 준비하고 나서야지. 정말 성인식을 앞둬도 여전하다니까.”

“성인……식? 누구의?”

“얘 좀 봐. 자신의 성인식 날짜도 잊어먹는 사람이 어디 있니.”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반응에 그제야 표정을 바꾼 아키라가 코우타의 앞으로 다가온다.

“카즈라바 코우타─ 의 성인식이지! 힘차게 마족 때려잡고 오라구!”

“으으응?!”

결국 코우타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어영부영 옷을 갈아입고 아키라의 응원을 받으며 낯선 집을 나오자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코우타는 그만 입을 쩍 벌렸다. 단단한 나무나 벽돌을 쌓아 만든 집들과 특이한 문양이 그려진 간판을 내건 가게. 거리를 돌아다니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저마다 검을 차고 있거나 활, 스태프를 등에 멘 사람들이 섞여있다. 분명 코우타는 이 풍경을 본 적이 있다. 이곳은 팀 가이무의 팀원들은 물론이고 또래의 청소년들에게 유행했던 RPG 게임의 스타팅 마을이다. 불현 듯 게임 화면이 떠올라 고개를 들자 코우타의 눈앞에 디지털 문자들이 사르륵 떠올랐다. 방금 코우타가 떠올린 그 게임의 타이틀이다. 마치 모험의 시작을 알리듯 반짝거리며 형형색색으로 변하던 타이틀은 곧 흩어져 사라진다.

그럼, 정말로 게임 속이란 말이야? 혼란스럽던 머리가 어느 정도는 정돈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은.

‘별 꿈을 다 꾸겠네, 정말.’

그래. 꿈이다. 모르는 새에 지치기라도 했나보다. 어쨌든 이 정도까지 리얼한 꿈이라면 꿈에서 깰 때까지 어떻게 흘러가나 지켜보자, 싶은 기분이 들게 되기도 한다. 조금은 두근거리는 맘을 안고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야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자주 보았던 퀘스트 안내 화살표가 시야가 닿는 곳에 동동 떠있었기 때문이다.


“오! 코우타, 왔냐!”

“…세상에.”

정말로 세상에다. 화살표가 인도한 곳은 마을에 있는 수련관. 마을 내의 자라나는 새싹, 어린 전사들을 양성하는 곳이다. 이를테면 검술 교실 같은 느낌일까. 이곳에서 코우타를 반긴 것은 상체를 반쯤 가리는 흉갑을 입은 반도였다. 

“네가 벌써 성인식을 치를 나이가 됐다니… 저 밖에 있는 목각인형에 머리 들이박고 울던 때가 바로 어제 일 같은데 말이야.”

그런 기억 없거든…… 어쩐지 감개무량한 표정의 반도에게 코우타는 그저 속으로만 툴툴대었다.

이동하면서 메인 퀘스트 창을 살펴본 결과, 코우타 자신은 이곳 도에이 대륙의 자와메 마을에서 자라 성인식을 앞두고 있는 전사- 라는 설정인 것 같다. 정확히는 예비 전사다. 자와메 마을엔 예비 전사들이 성인이 되면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성인식이다. 마을의 장로가 지정해준 지역으로 가서 마족의 뿔을 베어오는 것이다. 이제 갓 성인이 된 전사들에게는 어찌 보면 지독한 풍습이다. 실제로 성인식에 나서 목숨을 잃은 전례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자와메 마을의 전사치고 성인식을 거치지 않은 자는 없다.

코우타가 게임 배경을 한 번 곱씹는 동안 ‘경계에 도착하면 아무거나 막 집어먹으면 안 된다.’ 등등의 주의사항을 말해주던 반도는 여러 가지 효과를 가지고 있는 포션들을 서너 개씩 안겨주었다.

“자. 이거 잘 챙기고. 그럼 어서 마을 입구로 가봐라. 같이 갈 동료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어어. 그럼… 다녀올게.”

주섬주섬 포션을 챙기고 수련관을 뒤로 하고 나선다. 달그랑 서로 부딪히는 포션병들의 무게가 느껴지자 제법 이 상황이 실감이 났다. 그나저나 동료가 있다고 했었지. 누굴까, 이번에도 반도 형처럼 내가 아는 얼굴일까? 이동하는 동안 아는 얼굴을 하나하나씩 떠올리다가, 마침내 오우렌까지 생각이 다다랐을 때 코우타는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 서서 등을 보인 채 서있는 인영은, 역시나 차림새는 평소와 달랐지만 코우타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모습이었다. 반가움을 담아 입이 먼저 소리쳐 불렀다.

“우와, 밋치!”

“…코우타 형!”

어째서인지 코우타의 부름에 돌아본 미츠자네는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곧 저를 향해 밝게 웃는 모습에 코우타는 약간 안도했다. 어쩐지 재미있는 꿈이 될 것 같았다.



#02.

[필드: 헬헤임 숲의 경계]

숲에 발을 들여놓자, 앞서 게임 타이틀을 보았을 때처럼 코우타의 시야에 필드 명이 사르륵 떠올랐다가 금방 사라졌다. 이곳은 자와메 마을에서 벗어나 뒤편으로 한참 걸어가면 나오는 숲의 입구다. 세상의 멸망을 불러올 미지의 영역, 헬헤임의 영향을 받아 변이된 첫 번째 숲이다. 자와메 마을은 이 헬헤임이 더 확산되는 것을 막고자 자리 잡은 파수꾼들이 세운 마을이다. 아무튼 이 숲은 미지의 영역에서 건너오거나 영향을 받은 마족들로 인해 생기를 잃은 지역. 한가하게 미츠자네와 노닥거리며 지나온 거리와는 다르게 긴장을 해야 하는 곳이다.

필드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동하는 동안 시간을 모두 보낸 탓에 날은 금방 어두워졌다. 지금 이동하기엔 위험하다. 적당히 나무들이 얽히면서 만들어진 몸을 숨길만한 장소를 발견했을 때 미츠자네를 멈춰 세웠다.

“밋치! 여기서 쉬었다 가자.”

“아, 네.”

미츠자네는 순순히 코우타의 말을 따랐다. 이렇게 보면 현실에서 코우타를 잘 따르던 밋치와 똑같은 것 같아. 그런 맥락없는 감상을 하며 일단 텐트를 칠 자리부터 잡았다.

“그럼… 이제 한명은 불을 피우면서 텐트를 치고, 한명은 사냥만 해오면 될 것 같은데.”

각각 어떤 역할을 하면 될까. 슬쩍 스킬 창을 보자 메인 격인 전투 스킬 이외에 보조 스킬 항목을 보자 꽤 종류가 많았다. 불 피우기, 휴식하기, 요리 등등…… 이것저것 건들다 말았는지 랭크들은 모두 어중간하다.

“제가 사냥하고 올게요. 활로 쏘면 금방일 테니까요.”

“어? 알겠어! 그럼 부탁할게.”

그러고 보면 코우타 자신이 검을 쓰는 반면에 미츠자네는 활을 지니고 있었다. 미츠자네는 말 그대로 명사수였으니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가 사냥을 위해 자리를 떠나고 나자 코우타도 잽싸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중간하지만 그래도 못 써먹을 정도는 아닌 스킬들을 정성껏 발휘하며 몸을 따뜻하게 녹여줄 불을 피우고, 잠시 몸을 누일 텐트를 쳤다. 하는 김에 미츠자네가 들고 돌아올 사냥감을 손질하기 위한 자리도 만들어두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잠시 쉴 겸 자리에 털썩 앉는다. 불온한 기운이 감도는 숲은 적막하다. 기괴하게 나무 기둥을 감싸며 얼기설기 얽힌 넝쿨들을 바라보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아까부터 신경이 쓰였던 위치를 탐색해보기로 했다.

코우타가 원할 때마다 반투명하게 코우타의 시야에 잡히는 게임의 인터페이스가 있다. 그 중 아래 부분에 나열된 아이콘들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책 모양이 그려진 아이콘의 이름은 시나리오. 메인 퀘스트를 진행할 때마다 새겨지는 캐릭터 고유의 스토리가 기록되는 곳이다. 아직 게임의 초반이기 때문에 목록은 딱 하나 뿐이었다. ‘00’ 이라는 숫자만 기록된. 미츠자네가 오기까지 시간은 좀 더 걸릴 것 같다. 코우타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아이콘의 위로 손을 뻗는다.


순간 눈앞이 훅하고 꺼졌다가 다시 빛났다. 푸른 하늘 아래 자와메 마을.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는 부모님의 손을 하나씩 양손에 꼭 쥐고 어린 소년은 걷는다. 코우타는 처음부터 자와메 마을에서 나고 자란 것은 아니다. 자와메 출신이었으나 마을을 떠난 어머니와 외부 지역의 용병이었던 아버지.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마을에서 이름난 마법사였던 어머니는 결국 고향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남편과 어린 딸, 아들을 데리고서 다시 자와메로 돌아왔다.

암전. 화면이 바뀌었다. 어린 코우타는 금방 마을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는 날 때부터 타고난 전사였다. 자연스럽게 나무칼을 차고서 같이 전사를 지망하고 있는 제 또래 아이들과 우와아하고 몰려다니기 일쑤였다. 마을 구조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서 좀 더 먼 들판으로 나왔던 어느 날이었다. 홀로 들판에 앉은 왜소한 아이가 있었다. 마을에 저런 애가 있었던가? 어린 코우타는 그저 놀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다며 좋아서 다가갔다. 개구쟁이처럼 즐겁게 웃던 친구들이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코우타를 말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발견하자마자 어깨를 흠칫 떨며 도망가는 뒷모습이 오히려 저를 잡아달라고 외치는 것 같았으므로.

“이거 놔…! 나는 집으로…!”

“저기, 이름이 뭐야?”

도망가는 사람을 붙잡고 한다는 말치고는 참 뜬금없었지만 어쩌겠는가. 코우타는 고작 10살짜리 어린애였다. 코우타에게 잡힌 아이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이름은 카즈라바 코우타야! 어, 저기, 이 마을에 온지 얼마 안돼서 모두를 잘 몰라…”

멋쩍은 미소와 함께 묻자 아이의 동그랗게 뜨인 눈에서 놀라움이 가셨다. 두려움이 가신 눈에 내려앉은 것은 붉어져가는 눈시울과, 그리고 기쁨. 코우타는 그때 이 아이를 붙잡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미츠자네.”

“그렇구나. 잘 부탁해!”


그 날 밤, 새 친구와 사귀고 체력이 다 할 때까지 미츠자네가 안내하는 마을 근처의 숨겨진 명소들을 이리저리 쏘다닌 코우타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소년은 꿈을 꾼다. 한치의 빛도 비추지 않는 깊은 어둠. 금방이라도 수렁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어린 소년의 앞에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인영이 있었다. 코우타와 비슷하거나, 그보다는 작은 인영은 몸부림을 치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 인영은 무엇인가에 휘감겨져있다. 그것은 마치 기괴한 날개를 단 괴물처럼 작은 인영을 잡아먹으려 하고 있다.

……와, ㅈ… 나를, ……줘……

인영이 저에게 손을 뻗는 것 같았다. 도와줘야 하는데! 소년의 몸은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움직이질 않는다.

결국은 그림자에게 잡아먹혀 사라지는 인영.

그것은.


“밋치?”

“네? 아, 저 돌아왔어요. 용케 아셨네요.”

퍼뜩 정신을 차리자 양 손에 토끼와 커다란 새를 들고 있는 미츠자네가 서있었다. 잡아온 사냥감을 자랑하듯 웃어보이는 미츠자네에게 코우타는 미소를 되돌려줄 수 없었다. 방금까지도 저에게 있는 힘껏 뻗었던 인영의 손이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03.

“여기… 맞지?”

“맞을 거예요. 여기 표식도 있고.”

코우타와 미츠자네는 하늘을 가리듯이 넓게 가지를 뻗은 거무튀튀한 고목 앞에 도달했다. 성인 여섯 명이 양손을 쭉 뻗어야 겨우 감쌀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거목의 가운데에는 찢어발긴 것 같은 입구가 있다. 이곳을 넘어서면 헬헤임이다. 마족들이 득시글한, 그들의 목표가 있는 곳. 본격적으로 긴장되기 시작했다. 마른 침을 삼키고서 코우타는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가자, 밋치!”

“아, 네!”

먼저 나서는 코우타의 뒤를 미츠자네가 금방 따라붙었다. 등 뒤에서도 긴장한 기색이 느껴졌다. 애써 너스레를 떨며 미츠자네의 긴장을 풀어주고, 드디어 처음으로 마물들과 조우했다. 첫 전투였지만 의외로 쉬웠다. 코우타야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해서 인베스와 싸우던 감각이 있었으니 크게 어렵지 않았고, 미츠자네야 코우타의 꿈이 만들어낸 게임 속 주민이니 당연히 전투 실력이 좋을 것이다. 거기다가 코우타와 미츠자네는 꽤나 호흡이 잘 맞기도 했다. 코우타가 마물을 맞서며 움직이기 어렵도록 상처를 만들면 미츠자네가 화살을 쏘아 목숨을 끊었다. 시작은 어렵지 않았으나 역시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수가 늘었다. 이러다 보스 만나기 전에 게임 오버 당하겠네. 속으로 투덜거리며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에 미츠자네가 그를 불러세웠다.

“코우타 형!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에요.”

“어?”

“이쪽이요.”

코우타가 가려던 방향과 정반대인 곳을 가리키며 미츠자네가 손짓했다. 처음 코우타가 미츠자네를 이끌던 것과 반대로 어느샌가 미츠자네가 코우타를 안내하는 형식이 되어버렸다. 미츠자네를 따라가던 코우타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둘 다 이 필드는 처음 오는 것 아니었던가? 그런 것치고는 미츠자네가 이상하게 길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코우타는 금방 그 의문을 지웠다. 아무렴, 길을 금방 찾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거기다 미츠자네는 똑똑한데다, 장로의 동생이니까. 미리 지도라도 챙겨봤겠지.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마물의 랭크도 높아져 제법 난이도가 되었다.

“코우타 형. 이 수풀만 지나면 보스, 아니 마지막일거예요.”

“…! 저기있다.”

마침내 목표 지점에 다다랐다. 우선 정비를 하며 수풀 뒤로 몸을 감춘 채 슬쩍 안을 바라보자 검은 날개로 제 몸을 감싼 채 대기 모드에 빠져있는 마족이 보였다. 척 봐도 강해보였다. 무엇보다 그 마족의 위에 떠있는 ‘발록’의 이름이 무척이나 새빨간 핏빛이었다. 적어도 코우타의 레벨보다 5 이상은 차이가 난다는 의미다.

“젠장, 초반부터 이딴 난이도가 어디 있어.”

아무리 꿈이라지만 너무한 게임 아냐, 이거. 불만이 무심코 입 밖에 튀어나온 모양이다.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는 미츠자네에게 아무 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휘저은 코우타는 전의를 다잡았다. 아무튼 저 놈만 때려잡으면 퀘스트 클리어다. 검 자루를 꼭 쥐었다. 제일 먼저 나선 것은 역시 검을 쥔 코우타다. 침입자를 발견한 발록이 울부짖으며 하는 공격들을 잽싼 몸놀림으로 피하며 몰아붙였다. 코우타가 틈을 만들면 미츠자네는 귀신같이 지원사격을 했기에 생각보다는 수월했다. 이것은 인베스다, 상급 인베스다. 베이면 난 끝이다. 그래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기 위해 자기세뇌를 걸며 발록의 주의를 끌던 코우타가 드디어 타이밍을 잡았다. 발록의 강한 한 방을 간신히 막아내며 물러나 살짝 빈틈을 만들자 섬광처럼 날아온 화살이 급소에 명중했다. 미츠자네가 쏘아낸 화살이다.

숲을 뒤흔드는 긁는 듯한 비명과 함께 둘을 애먹인 상대가 쓰러졌다.

“해냈다아!”

코우타는 검을 치켜들며 환호했고, 미츠자네는 발록이 쓰러진 자리로 뛰어가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으로 발록의 뿔을 베었다. 웃어보이는 미츠자네의 손에 들린 저 뿔이 바로 둘의 성인식이 무사히 끝났다는 증표가 되어줄 것이다. 드디어 한 건을 끝냈다는 성취감이 들자 이 기분 나쁜 숲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건 미츠자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라 주머니에 뿔을 챙기고 단단히 봉하며 서두르는 것이 보인다. 이제 마을로 돌아가면 퀘스트가 완료되겠지. 그리 안도한 순간이었다.


“코우타 형, 저희도 이제 어엿한 성인이……”

“밋치! 뒤를 봐!”

그림자가 뒤엎었다.



#04.

그것은 순간이었다. 쓰러트린 줄로만 알았던 발록의 시체가 꿈틀거리더니 다시 일어난 것이다. 숨이 끊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생명을 불태우듯이, 괴물이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던 찰나에 코우타는 들고있던 검을 있는 힘껏 던졌다.

퍼억! 코우타가 던진 칼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발록의 몸에 깊이 박혔다. 그와 동시에 쏟아지듯 피가 튀었다. 멀리 서있었던 코우타에게도 몇 방울이 튈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바로 앞에 서있었던 미츠자네는 피웅덩이에 몸이라도 담궜던 것처럼 마족의 피를 뒤집어썼다.

숲은 끝없이 고요했다.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없이 서있는 미츠자네를 향해 괜찮냐는 물음조차 던질 수 없었다. 몸 여기저기에 피가 튄 미츠자네의 얼굴이 유난히 하얗게 질려보이는 것이 그저 단순한 눈의 착각이길 바란다.

“밋…치…?”

조심스럽게 그의 애칭을 부르자 한 차례 바람이 지나갔다. 바람이 지나간 자욱을 따라 숲이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그 소곤거림은 분명한 환희.

“밋치?”

침묵을 지키던 미츠자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되묻는 입술은 기분좋은 호선을 그리고 있다. 뭔가 이상했다. 이상해.

“그 바보 같은 이름은 나를 말하는 건가?”

미츠자네가 고개를 들었을 때 코우타가 마주한 것은 붉은 눈동자. 듣기 좋았던 밋치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뒤틀리고 갈라진 목소리가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지금껏 함께 자라오면서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정돈되고 오만한 얼굴의 미츠자네와 시선이 마주치자 순간 몸이 경직하듯 굳었다. 마른 침을 삼킨다.

“정말 겁도 없어. 거기다 저급하기까지 해. 이딴 쓰레기 하나 치운 걸로 너희들은 스스로가 강하다 믿겠지.”

미츠자네가 숨이 끊어진 발록의 시체를 걷어찬다. 한 번의 발길질로 그 커다란 시체는 저 멀리 밀려났다. 코우타는 말문이 막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눈앞에 서있는 사람은 정말로 내가 알던 밋치가 맞는 것인가.

“그러니 나는 너희들에게 악의를 선물할거야. 인간들은 오늘 이후로 세상의 주인이라는 좌를 마족들에게 넘겨야할 것이다.”

뒤틀리고 갈라진 목소리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아니야, 이건 밋치의 목소리가 아니야. 누군가 미츠자네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미츠자네의 몸에 뒤덮인 피가 그림자처럼 일렁거렸다. 주변의 모든 것들을 빨아들일 것처럼 넘실거리는 것은 코우타도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그림자. 아주 어릴 적 꿈에서 보았던 그 그림자다.

“밋치! 가면 안 돼!”

코우타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때서야 바위처럼 굳어서 움직이지 않던 몸이 움직였다. 그러나 미츠자네에게로 뛰어드는 몸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가볍게도 밀쳐져 던져졌다.

“밋치!”

이미 앞선 전투로 인해 충격을 버티지 못하는 몸을 부여잡고 손을 뻗었다. 꿈속의 인영에 뻗지 못했던 손이다. 무심한 시선은 코우타의 시선에 얼마간 머물렀다가, 그림자에 삼켜졌다.

“밋……!”

간신히 몸을 일으켰으나 미츠자네는 이미 사라진 뒤다.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숲은 다시 고요했다.


띠링!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경쾌하기까지 한 그 소리가 오싹, 소름이 돋았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허공에 떠오른 디지털 문구가 황망히 뜬 코우타의 눈에 담겼다. 절로 무릎이 꺾여 주저앉는다.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되었다. 코우타는 깨달았다. 나는 이 풍경을 이미 알고 있었다. 미츠자네를 처음으로 만났던 그 어린 날 밤 속에서, 나는 꿈에서 밋치를 보았다. 그건 밋치였어. 그림자에 휩싸여서 내게 애타게 손을 뻗었던 것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것은 밋치였다.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그 분함이 뒤늦게 몰려와 주먹으로 땅을 내려쳤다.

“아니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제 고작 퀘스트 하나가 끝났을 뿐이지 않은가. 아직 게임의 엔딩은 나오지 않았다. 힘 빠진 다리에 억지로 힘을 불어넣으며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인을 잃고 땅에 나뒹구는 활을 집어 든다. 사라지기 전 저에게 뻗은 코우타의 손을 바라보며 미츠자네는 말했었다. 코우타는 미츠자네의 움직이는 입 모양을 분명히 보았다.

멀리멀리 도망가요. 코우타 형.

코우타와 함께 뒹굴며 자랐던 밋치가 남긴 말이다. 그 말이 겨우 코우타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했다. 아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잃은 것은 아님을 알았다. 나는.

“구하러 갈게, 밋치.”

희망을 보았는데 도망갈 리가 없다.

다시 경쾌한 소리가 귀를 울린다.


[새로운 퀘스트가 부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