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성향/레이] 여행자

GARO2017. 2. 5. 01:29

이전 특촬 글 연성 스터디에서 드림으로 스킨쉽을 넣어보자는 주제로 썼던 글..

가로 첫 연성..!은 아니지만 나름 맘에 들었던 글...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레이로 드림을 쓴다는건 정말 엄청난 도전인 것 같다는 생각이.

 

 


 

<여행자>

 여자는 오랜만에 집문을 들어섰다. 자전거 정도면 충분히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도심과 약간 벗어나있는 숲길을 지나면, 집을 감싼 돌담이 맞닿는 끝에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진 문 두 짝이 굳게 닫혀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오면 작은 연못이 함께 있는 아담한 정원이 보인다. 꽤 커다란 여행 가방을 끌고 들어와 마루에 앉으며 여자는 뒤를 돌아보았다. 시원스런 녹빛 장막들 사이로 집안의 풍경이 어렴풋히 보였다. 이 집에 사는 것은 여자 혼자 뿐이었기 때문에 그 모습은 여자가 여행을 떠나기 전과 변함이 없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푸르다 못해 하얀 한낮의 색이 있다. 여자의 여행은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오자마자 시작되었고, 그 봄이 물러가며 초여름이 찾아왔을 때 끝났다. 이제 서서히 여름이 다가오고 있으니 다시 일상에 몰두할 때가 되었으리라.

 


 "아~ 잘 먹었다. 곤자의 솜씨는 어째 날로 좋아지기만 하는데?"

 만족스럽게 입가를 닦은 냅킨을 내려놓으며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는 개구진 미소를 지었다. 남자의 장난끼가 다분히 넘치는 눈동자가 오른쪽을 향했다. 긴 사각으로 되어있는 테이블의 상석에 앉아있는 집주인의 바로 옆에 선 노집사를 향한 것이다. 오늘 사에지마 저택에서 집주인의 친우를 대접하기 위한 풀 코스의 저녁 식사는 모두 이 집사의 손을 거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집사는 그저 따뜻하게 웃을 뿐이었다.

 "여길 떠나면, 코우가 너보다는 곤자의 음식이 더 그리워질 것 같아 걱정이야."

 "이번에 옮긴 네 관할은 그리 먼 위치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네가 맘만 먹는다면 자주 찾아올 수 있을텐데."

 저택의 집주인은 여전히 목석같이 딱딱한 말투와 목소리로 내용만큼은 다정한 말을 했다. 예전같았으면 기사의 본분을 지키라느니 뭐라느니하며 잔소리를 했을 것이 분명한 그의 말에 남자는 새삼스럽게 감탄한다. 아이 아버지가 되더니 이제 슬슬 그 강철같은 냉정함이 녹아가고 있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단 것을 좋아하는 남자를 위해 집사가 직접 만든 수제 푸딩을 한 입에 털어넣은 그는 의자를 밀며 일어섰다.

 "레이."

 그의 움직임에 따라 사에지마 코우가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자리를 뜨려는 기미를 보이는 그를 배웅하기 위함이었다. 손님을 반기는 아내를 위해 좀 더 머물다 가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같은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는 레이의 버릇을 알아 굳이 말하진 않았다. 레이는 그 대신, 테이블 건너 자신의 맞은 편에 놓인 빈 의자를 한번 바라보고는 코우가에게 말했다.

 "카오루에게도 전해줘. 오늘처럼 즐거운 저녁 식사가 그리워질 때 다시 놀러오겠다고."

 그녀는 코우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의 보챔을 이기지 못해 먼저 방으로 잠시 들어가 있는 중이다. 레이가 떠난 것을 나중에 알게 되면 배웅을 못했다며 서운해 하겠지만 굳이 불러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짧은 인사를 나눈 뒤 레이는 현관을 향했다. 살고 있는 사람의 수에 비해 굉장히 넓은 저택이지만 크기가 무색할 정도로 가족의 정이 곳곳이 스며들어 있는 곳이다. 그 온기를 나눠받을 수는 있을지언정 이 곳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저택 안을 잠시 둘러본 레이는 피식 웃으며 현관을 나섰다.

 


 집을 오랫동안 떠나있다가 돌아오면 며칠 동안은 자신의 집임에도 불구하고 적응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 날 밤도 그랬다. 분명히 집 안은 자신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은 그대로이며, 가구나 생필품들의 배치도 그녀의 기억과 일치했다. 피로가 쌓인 몸을 뉘여 쉬다가도 갑작스러운 낯섬이 찾아오는 일이 종종 있다. 거실의 중앙에 놓은 낮은 탁자에 기대 책을 읽던 그녀는 문득 페이지를 넘기던 손을 멈췄다. 마루 위 처마에 매달아놓은 풍령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를 신호로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어릴 적 악몽을 꾸고서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했던 날이 갑자기 떠오르는 이유는, 단순히 집이 낯설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체모를 괴성을 들은 것도 같다. 아니, 고개를 저으며 기분 탓이라 여겼다. 밤이 늦었으니 그만 잠들자. 그렇게 읽던 책을 덮은 순간 정원의 수풀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들린 소리에 여자는 화들짝 떨며 얼어붙은 채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쪽에는, 정원을 뒤덮은 어둠의 장막 아래에 선 사람의 모습이 있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어찌나 검었던지, 엉거주춤 일어났던 그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으며 짧게 끊어지는 비명같은 소리를 내었다.

 "꺄……!"

 "아, 미안미안!"

 그러나 그 공포가 무색하게도 검은 그림자는 당황한 목소리를 내며 밝혀둔 불빛의 영역 안으로 들어섰다. 그 그림자는 한 남자였다. 유독 검게 보였던 이유는 아무래도 입고 있던 옷 탓인 듯했다. 남자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얼 빠지기까지 한 목소리로 당황한 얼굴의 남자는 놀란 그녀를 달래는데에 필사적이었다. 그 노력이 통했는지 그녀는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았지만 남자의 특이한 옷차림을 보고 아직 의심을 거두지 못한 듯 경계의 눈초리를 했다. 여차하면 경찰을 부를 셈인지 손에는 휴대폰이 꼭 쥐어진 채였다. 남자는 위해를 가할 생각이 전혀 없을을 보이기 위해 양 손을 어깨 위로 올려보이며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최대의 선의의 표정을 지어보였다.

 "주인이 있는 집인 줄 몰랐어, 진짜야. 놀라게 해서 미안해."

 "……문 앞에 명패 걸려있는데요?"

 "아, 아하하…"

 머쓱하게 웃는 얼굴을 바라보니 긴장이 풀려 여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남의 집 안 정원에서 서성거리는 괴한을 경찰에 신고해 버리려 했으나 왠지 그럴 맘이 들지 않았다. 여전히 의심할 여지는 충분히 있는 남자였으나 방금까지 그녀가 느끼고 있던 공포가 남자의 등장과 함께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신고를 하는 것 대신 그녀는 남자에게 자리를 권했다. 어찌 보면 위험한 행동이었으나 호기심이 동한 것이 더 컸다. 무엇보다 남자는 그녀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묘한 확신히 들었다.

 "명패는 나도 봤었는데… 일주일이 넘도록 집 안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거야. 그래서 주인 없는 버려진 집이구나 했지."

 "그 소리는 우리 집에 몇번 들락날락 했다는 거네요?"

 "앗차…… 이게 또 그렇게 되네…"

 남자는 당황을 감추기 위해 그녀가 차와 함께 내어준 양갱을 냉큼 입에 넣고 변명거릴 찾는 듯 했다.

 "우리 집엔 훔쳐갈 만한 값 나가는 물건은 없어요."

 완전히 도둑놈 취급이구만. 그녀의 말에 그런 생각은 들었지만 누가봐도 자업자득이라 할 말이 없어진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이. 나 이래뵈도 착실하게 돈 벌고 있는 사람이니까. 거기다 못 받는 것도 아니고."

 목숨값이라 문제지만. 남자는 의미심장할 말을 삼켰다.

 "그런 사람이 남의 집엔 왜 들어와요?"

 "그냥 지나가다가, 으음, 그러니까…… 아! 흰 꽃이 이쁘길래."

 "꽃?"

 하얀 꽃. 담장을 장식한 흰 꽃이 자라는 넝쿨을 말하는 듯 했다. 꽃 구경을 좋아할 것 같은 이미지는 아닌데 말이다. 누가 봐도 변명 거리를 둘러댄 말이었으나 그녀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의심하는 대신 그녀는 어느샌가 친근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럼 앞으론 제 허락을 받고 당당하게 놀러와요. 우리 정원엔 흰 장미도 피거든요."

 남자는 잠시 의외라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곧 빙그레 웃었다. 20대 후반쯤은 되어보이는 외모였으나 눈웃음만큼은 소년처럼 개구쟁이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후 남자는 주인의 허락을 받았다는 이유로 당당하게 제 집처럼 여자의 집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그 방문은 어쩐지 조심스러운 구석이 있어서 남자가 다녀간 흔적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아서 꼼꼼한 성격의 그녀가 굳이 청소를 할 필요도 없었다. 남자의 방문은 주기적이지 못하고 매우 변덕스러웠지만, 간혹 찾아오지 않더라도 제 이름을 적은 카드와 함께 달달한 간식들이 든 바구니를 마루에 놓고갈 때도 있었다.

 오늘은 모처럼 남자가 방문한 날이었다. 남자가 찾아와도 딱히 하는 일이라고는, 남자가 선물로 들고온 저녁거리로 간단하게 저녁을 지어먹고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다.

 "레이가 하는 일은 뭔지 가끔 너무 궁금해질 때가 있어."

 어느 덧 그녀는 남자의 이름을 친근히 부를 정도가 되었다. 두 번째 만남 때 그녀가 물었던 남자의 이름은 스즈무라 레이라고 했다. 그리고, 직업은 비밀.

 "어라라라. 전에 얘기하지 않았었나? 너처럼 혼자 사는 미인을 나쁜놈들로부터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고."

 "흐응. 아직도 말해줄 생각이 없다는거네."

 아하하. 레이는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무언가 말을 돌리고 싶을 때마다 일부러 웃음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 되지 않는 시간동안 그녀가 눈치챈 그의 버릇이었다. 그녀는 더 말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레이는 특이하게도 여자가 해주는, 여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정말로 별 것 없는, 이렇다 할 것이 없는 평범하고 평범한 그녀의 이야기를.

 "그래도 당신이 회사원이 아니라는건 알겠어. 왜냐하면 나도 회사원으로 생활할 팔자는 아니라서, 그것만은 알아볼 수 있겠거든."

 "아, 맞다. 프리랜서라고 했지? 어쩐지 생활이 너무 자유롭다 했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일찍 일어나는게 싫어서 회사 안다니는 거니까."

 농담같은 말을 건네며 여자는 레이가 디저트로 사온 케이크의 한 조각을 그릇에 담아 밀어주었다. 초콜렛 장식이 되어있는 그 케이크는 지극히 레이의 취향이 반영된 것으로 레이는 여자보다도 더 단 음식을 좋아했다. 그 대신 곁들여 먹는 차는 씁쓸한 입맛을 가진 여자가 직접 탄 녹차였다.

 "그러면 그 전까진 왜 집에 없었어?"

 레이의 물음에 여자는 대답 대신 검지손가락으로 거실 안쪽 벽을 가리켰다. 장식품이 여럿 놓인 장식용 테이블 위쪽의 벽에 사진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 사진들은 제각각 다른 풍경들로 여자가 직접 여행을 다니며 찍었던 사진들이다.

 "놀러 나가 있었지. 나 한 곳에 오래 붙어있질 못해서."

 헤에에. 흥미로운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난 레이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 벽으로 가까이 다가가 붙어있는 사진을 한장한장 주의깊게 구경했다. 국내, 해외를 가리지 않고 여러 곳을 찾아갔던 듯 풍경은 제각각이다. 더운 햇살 아래에서 코끼리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는가 하면 무릎까지 쌓인 눈밭에서 눈덩이를 굴리고 있는 사진도 있다. 또한 서양 백인 꼬마들과 함께 그 나라의 전통 의상을 입고 함께 노는 사진들도 여러 장이 있었다. 하나같이 사진 속의 여자는 즐겁게 웃고 있어서 레이의 얼굴 역시도 절로 웃음이 피어나왔다.

 "몇 달간 빡쎄게 일해서 그 돈으로 여행을 가는거지. 그리고 거기서 탱자탱자 놀다가 돈이 모자라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쉬면서 일하고."

 "계속 그렇게 지낸거야?"

 "응. 그래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이 집을 유산으로 남겨주신거거든. 자유롭게 사는 것은 간섭 안하겠지만 돌아와 쉴 곳은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전혀 그렇게 안 보였는데 말이야. 사진 구경을 끝낸 모양인지 혼자 중얼거린 레이는 다시 그녀의 옆 자리로 되돌아와 앉았다. 그녀가 타온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금방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로 쓴 것은 어지간히도 맞지 않는 듯 했다. 결국 그녀는 새 잔을 꺼내 미리 끓여둔 커피가 담긴 포트에서 커피를 따라 그의 옆에 내려놓았다.

 "이해해. 나 이래뵈도 얌전한 요조숙녀처럼 생겼잖아?"

 "자기 입으로 요조숙녀……"

 왜? 아아니. 영양가 없는 문답을 서로 주고받은 끝에 침묵이 찾아 왔다. 레이가 그녀를 자주 찾아오는 여럿의 이유 중 한 가지는 가끔 찾아오는 침묵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할 만한 이야기를 모두 끝내면 그 이상은 입을 열지 않는다. 그렇다고 침묵을 싫어하지도 않아서 상대에게 이야기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사실 레이와 그녀의 여러 차례 만남에서 대화하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레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꺼내지 않는 편이었고, 그녀는 자신이 할 만한 이야기를 모두 마치면 입을 다문 채 가끔씩 간식거리를 먹으며 독서를 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레이는 그녀가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면서 사 모은 가구나 장식품들을 구경하거나, 정원의 연못에서 기르는 잉어를 조금 놀래켜 보거나, 그도 아니면 꽤 친근해진 요즘같은 때면 책을 읽는 그녀의 무릎을 빌려 머리를 누인 채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은 세번째를 택했다. 눈을 감은 눈꺼풀 위로 책을 넘기는 종이의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이미 익숙한 듯 레이가 조용해지자 한창의 습기와 더움이 가신 여름의 밤바람처럼 서늘시원한 그녀의 손가락이 레이의 머리카락을 가끔씩 쓸어넘겼다. 그 알 수 없는 편안함에 취해 선잠에 빠질 것 같았다.

 


 밤이 깊어져 그녀가 잠들 때가 되었을 때 레이도 집을 나섰다. 현관이 굳게 잠기는 소리를 들으며 레이는 쭈욱 기지개를 폈다.

 [제로. 이 집에 있던 게이트는 이미 제로 덕에 완전히 봉인되었으니, 이제 그녀가 호라에게 노려질 일도 없을 거야.]

 사람의 인영은 레이 한 사람 뿐이었으나 갑작스럽게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레이는 놀란 기색도 하나없이 왼손을 들어보였다. 목소리의 근원은 레이의 손등, 여태 코트의 소매에 가려져있던 장갑에 달린 장신구로부터 였다. 단순한 장신구같기도 하고, 여인의 얼굴을 닮은 것같기도 한 은색 물체의 하관이 덜걱거리며 또 다시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데도 계속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때문이야?]

 여인의 목소리는, 책망하는 것도 같았지만 아들을 대하는 어미와 같은 배려도 함께 묻어나왔다. 여인의 물음에 레이는 잠시 밤인사를 나누기 전 그녀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레이도 나와 비슷한 사람인 것 같아."

 "응? 뭐가?"

 "한 곳에 맘 못 붙이는 거."

 신발을 신던 레이의 움직임이 잠시 멎었다가, 천천히 일어섰다. 함께 마루에서 내려온 그녀는 문까지 이어진 짧은 정원의 길을 함께 걸었다.

 "그러니까 자주 놀러와. 내가 있든 없든 괜찮아."

 "네가 없음 놀러오는 의미가 없는게 아닐까나."

 "거짓말. 나만을 위해 오는건 아니잖아. 내가 여행을 떠났더라도 이 집만은 그 자리 그대로에 있을거야. 그러니까 이 집을 당신에게 함께 공유해줄게."

 

 끼익, 굳게 닫혀있던 나무 문을 밀어 열며 그녀는, 레이를 바라보고선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이 집은 있을 곳을 찾지 못하는 나와 당신의 휴식처가 될 거야. 라고. 아마 그 말이 물음의 진실한 대답이 될 것이다. 그야 레이의 손등에서 시르바도 함께 들었을테니. 그러나 레이는 시르바의 물음을 그저 넘기지 않고 장난끼가 담긴 대답을 했다.

 "글쎄, 시르바의 제로는 외로움을 잘 타는 남자 아이라 그런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