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제이드/히이에무] 그랬으면 한다

SHT2017. 2. 13. 01:24

에그제이드 18화까지의 스포일러 포함.

 

그냥 딱 한 문장이 쓰고 싶어서 여차저차 시작했다보니 두서없는 글이 되었지만

그래도 썼으니까!

 

공백 포함 1,338자

 

 


 

  요즘 카가미 선생님이 이상해요. 수술실에서 자주 그와 호흡을 맞추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하는 말이다. 이상하다고는 해도 그가 크게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심하고 정확한 그의 수술 실력은 여전했고, 환자의 사소한 병도 놓치지 않는 예리한 눈썰미도 그대로였다. 그들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은 카가미 히이로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다. 그의 세계에는 그를 제외한 아무도 없었다. 저 홀로 고고하고 당당하게, 견고하게. 그러나 수술실에서 그와 대면할 일이 많은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느낀 이상함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어떤 이유에선지 그가 세운 벽에 금이 가고 있었다.
  수군거림을 뒤로 하고 히이로는 CR로 향했다. 앞을 가리는 문이 옆으로 끝까지 사라졌을 때 테이블에 머리를 누이고 잠들어있는 호죠 에무가 시야에 잡혔다. 외과 연수를 시작한 이후로 에무는 종종 피로가 쌓일 때면 CR에서 조는 일이 잦아졌다. 예전이었다면 면박을 주는 목소리와 함께 그를 잠에서 깨웠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대신, 구두굽이 바닥과 부딪히는 소리를 덜 내도록 발소리를 죽이며 맞은 편에 앉는다. 그러고보니 예전엔 수술 도중에 빈혈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역시 이 남자는 정말로 외과는 맞지 않을지도.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호죠 에무가 버그스터의 앞에 나서는 횟수가 겹치고, 늘면 늘어날수록. 그의 체력은 깎여 나간다. 그가 모르는 사이에 차근차근 그 안에 있을 바이러스는 숙주의 몸을 갉아먹으며 집어삼킬 준비를 하고 있겠지. 흘러가는 시간이 벅차다. 이렇게 앉아있을 시간이 없는데도 할 수 있는게 없다. 늘 가샤트를 담고 다녔던 주머니가 텅 비어버려 가볍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게가 더 이상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비웃는다. 손바닥을 파고드는 손톱이 아프다.
  차라리 그에게 진실을 말하고 얌전히 CR의 침상에 누워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거부감이 느껴졌다. 사키도 저 위에서 사라졌다. 아, 그래. 사실은 끔찍할 정도로 싫었다. 네가 저 위에 누워있는 것은. 무엇 하나 남기지 못하고 지워진 사키처럼, 어쩌면 너도 물거품과 같이 영영 흩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맞은 편의 에무를 바라본다. 엎드린 등이 느릿하게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다. 그 템포는 평화로울 정도로 태평해서 조금은 안심이 된다. 그렇게 아무 것도 모른 채로 있었으면 좋겠다. 히이로 자신이 에무의 병을 치료할 때까지, 그저 저가 좋아하는 게임을 하며 아무 것도 모르고서 태평하고 속 편한 그대로, 그렇게. 너만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너만은 아무 것도 듣지 못하고 있기를 희망한다. 부디 그랬으면 한다.
 여전히 시간은 숨막히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