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미야 형제] 그 고양이의 하루
High&Low2020. 1. 1. 14:522018년 5월에 공개했던 아마미야 형제 합동 트리플지 레드레인에 수록되었던 특전을 공개합니다!
(사유: 주최님이 공개해버리셨길래 따라함)
부디 즐겁게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D
정신을 차려보니 익숙한 공기가 느껴졌다. 평소엔 셔터를 내려놓고 있기 때문에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공간. 오늘은 반쯤 열려있어 바닥의 반쯤을 햇빛이 잠식하고 있다. 바닥을 적신 햇빛만 반짝거릴 정도로 눈이 부셔서 눈살이 찌푸려질 듯했다. 아주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곳은 동생들과 일을 끝내고 돌아와 우리들의 바이크를 세워놓곤 하던, 집 옆에 딸린 차고였다.
처음엔 시야가 어두워 이상하다 싶었다. 햇빛이 비치지 않았다면 나는 이제야 내가 지옥에 떨어졌구나, 그리 여겼을지도 모른다. 사후세계를 진지하게 생각하며 믿어본 적은 없다. 그날, 카미조노회와 대치했던 나는 결국 동생들의 눈앞에서 목숨을 잃었다. 스스로 죽음길로 뛰어들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어깨며 배, 다리 할 것 없이 총을 맞아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나는 울고 있는 두 동생의 얼굴을 눈에 담은 채 숨이 멎었다. 이렇게 너희들을 울리다니, 나는 정말 아주 못되어 먹은 형이라고. 의식이 끊기는 순간 그렇게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그 뒤의 기억은 사실 흐릿하다. 아주 오랜만에 깊이 잔 것도 같고, 공허하기도 했다. 죽음 끝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구나. 죽었다면 왜 내 의식은 아직도 살아있는가. 그런 고찰까지 했던 것 같다. 아무것도 없는 우주를 떠도는 기분이었다. 죽어서야 나는 사후세계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던 정신을 헤집고 누군가가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목소리였는지, 그냥 나의 상상이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너 시끄러우니까 딱 하루를 허락해줄게. 그러니 미련을 털어내고 와.
동생들은 잘 지내는지 좀 걱정했을 뿐인데 시끄럽다니. 은근슬쩍 불만을 가진 사이에 갑자기 휩쓸리는 감각을 느꼈다. 망자도 감각은 느껴지나 보다. 마치 파도를 타고 여기저기 떠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에야 나는, 이 그리운 차고에서 정신을 차린 것이다.
바닥에서 비치는 햇빛을 보건대 아직은 한낮인 것 같다. 집엔 마사키와 히로토가 있을까? 혹시라도 들릴까 하여 버썩 메마른 것 같은 입을 열었다.
“애옹.”
……응?
“애애옹―”
……….
분명히 마사키와 히로토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던 내 목소리가 어딘가 달랐다. 일단 말이 제대로 구사되지 않았고, 그리고… 그러니까 이 목소리, 아니 울음소리는. 나는 드디어 주변을 제대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거대한 무언가가 있다. 자세히 뜯어보자 눈에 들어온 것은 배기관. 조금 고개를 들자 잘 튜닝한 바이크도 보인다. 그리고 그 바이크의 겉면에 비치고 있는 것은. 어쩐지 시야가 낮다 싶었다.
“애옹……”
나는 검은색 털을 가진 고양이가 되어 있었다. 허락해준다는 게 이런 의미였나. 아마도 신이 아닐까 의심이 되는 그 목소리는 내가 어지간히도 짜증이 났던 모양이다. 물론 나는.
뒷발을 살짝 굴러 바이크의 위로 올라간다. 생전보다도 몸이 훨씬 가벼워 느낌이 색다르다. 고양이는 다 이렇게 날아다니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고 사는 건가.
왠지 고양이의 삶을 조금 즐길 수도 있을 것 같다.
“뭐야.”
“어? 고양이다.”
바이크의 손잡이에 달린 백미러를 통해 고양이가 된 내 모습을 요모조모 살펴보는 동안 문이 덜컹 열리는 소리와 함께 두 개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론 잘 아는 목소리이며 반가운 목소리다.
내 귀여운 동생들. 마사키와 히로토.
“길고양인가?”
마사키가 먼저 성큼성큼 다가왔다. 1년 전에 내가 멋대로 녀석들을 떠나온 뒤, 다시 재회했을 때는 재회의 기쁨을 채 나누기도 전에 내가 죽었지. 나는 제대로 살펴볼 틈도 없었던 마사키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1년 새에 좀 더 철이 든 눈매를 하는 것이 대견스러웠다.
“우와. 히로토. 요 녀석 봐, 사람이 가까이 왔는데도 도망가질 않네.”
“특이한 녀석이네.”
마사키의 눈매가 신기하다는 듯이 둥글어졌다. 그러고 보니 마사키는 어렸을 적부터 유독 동물이 잘 따르질 않았다. 특히 고양이. 그 반면 히로토는. 안장을 디딘 채 다시 한번 발에 힘을 주며 가볍게 뛰어올라 히로토의 어깨에 안착했다. 백미러를 통해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가 펴지는 히로토의 얼굴이 보인다.
“히로토는 여전히 고양이들한테 사랑받는구나. 에라, 이 인기 많은 놈.”
갑자기 내가 뛰어오르자 놀라며 한 걸음 물러섰던 마사키는 나와 히로토의 모습을 보며 신기해하고 있다.
“사람 손을 탔나 본데. 산책이라도 나왔나 보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사람이었단다, 히로토.
늘 인상을 쓰고 있어 다가가기 어렵다는 평을 받곤 하던 히로토는 의외로 동물들에게 자상했다. 역시나 고양이에게 유독 그런 편이었다. 막 가족이 됐을 때, 우리에게 날을 세우던 히로토가 종종 고양이용 참치캔을 사다가 동네 구석구석에 놓고 다니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우연히 지켜보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잘못 사서 버린 것뿐이라며 둘러대던 모습도 참 귀여웠지.
“…요 녀석 웃는 건가?”
잠시 어렸을 적 히로토의 귀여움을 떠올린 탓이었나. 얼굴 근육이 풀어졌나 보다. 그나저나 고양이의 표정 변화까지 알아채는 마사키는 정말 눈썰미가 좋다. 역시 내 동생들은 옛날부터 하나같이 빠지는 구석이 없었지.
바이크의 안장을 받침 삼아 히로토의 어깨로부터 아예 바닥으로 내려와 다시 한번 목을 울려 울어본다.
“우애옹.”
“음? 왜왜? 배고파?”
마사키는 아예 무릎을 굽혀 쪼그려 앉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내가 올라타 있던 빈 어깨를 잠시 바라보던 히로토는 등을 돌려 어디론가 걸어갔다. 차고 구석에 쌓아뒀던 상자 하나를 뒤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저 상자는 주로 공구함이나 당장 필요하지 않은 잡동사니를 넣어뒀던 상자였을 거다. 갑자기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 히로토는 긴 시간을 들이지 않고 금방 돌아왔다.
“자.”
무얼 들고 오나 했더니. 나는 내 앞에 뚜껑이 열린 채 촉촉한 참치살이 가득 담긴 통조림을 본다. 히로토…… 아직도 길고양이들한테 먹이를 챙겨주고 있었구나. 마사키와 내가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자 아니나 다를까, 히로토가 마사키에게 역정을 낸다.
“뭘 쳐다봐.”
“아니, 히로토군이 귀여워서.”
둘이 투덕거리는 사이 나는 히로토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어차피 지금은 고양이니까 고양이 밥도 맛있겠지. 통조림으로 머리를 숙인다. 음. 역시 먹을 만했다. 내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마사키가 가만히 입을 연다.
“히로토. 있잖아.”
“뭐가.”
“얘, 엄청 친숙한 느낌이 드는데…… 나만 그래?”
“……글쎄.”
이 대화가 반갑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배도 든든히 채웠겠다, 아직 하루는 한참이나 남았다. 나는 빈 통조림을 두고 동생들에게로 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