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무/포도오렌] 당신과 이어진 세계
SHT2020. 3. 27. 19:35[특촬 IN School!!] 합작에 참여한 포도오렌 글입니다.
합작 링크는 여기에!
<당신과 이어진 세계> ─쿠레시마 미츠자네x카즈라바 코우타 이것은 아직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미숙한 신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교문 앞에 서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친구들과 떠들며 교문을 지나쳐 들어가는 가쿠란과 세일러복의 무리 사이에서 어리둥절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무심코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 살펴보면, 설마 했던 대로 검은 가쿠란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 학교 교복은 흰색이었을 텐데. “여어- 밋치!” 익숙한 목소리가 부르는 익숙한 애칭.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뒤를 돌아본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더더욱 여기에 있어선 안 될 목소리가, 방금 들렸다. 돌아본 뒤에선 믿을 수 없게도 그가 한 손을 크게 흔들며 뛰어오고 있다. “코우타… 형?”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내가 얼마나, 얼마나 당신을. 그런 심정도 알지 못하고 다가온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아침 햇살같이 웃었다. “좋은 아침! 뭐 해, 안 들어가고. 멍때리다간 지각한다?” 그리고선 손을 내려 내 손목을 붙잡고, 그대로 교문을 지나쳐 들어간다. 그 이어지는 행동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나는 무심코 그렇구나, 생각하고 만다. 흰색이든, 검은색이든 뭐가 중요해. 당신이 여기 있는걸. 언제나 나를 이끌어주었던 코우타 형의 손길을 따라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덕분에 나는 교문 옆에 붙어있을 학교의 명판을 확인하지 못했다. 처음 들어가 보는 교실이었지만 낯설다는 감각은 없었다. 왜일까. 아니,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생각과는 달리 몸은 익숙하게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교실 내에 있는 클래스 메이트들의 얼굴도 하나같이…… 처음 보는 얼굴인가? 잘 모르겠다. 아는 얼굴이 보인 것도 같고. 어차피 나는 원래 학교에서 같은 반이었던 이들의 얼굴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때 내게 중요한 사람들은 따로 있었고, 그러니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번의 나는 자리에 앉아 습관대로 수업 준비를 마친 채 가만히 턱을 괴고, 아직 자유 시간이 허락된 교실에서 즐겁게 떠들며 노는 클래스 메이트의 얼굴을 괜히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그 사이에는 리카와 래트도 있었다. 그것이 괜히 반가워 웃음이 나왔다.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수업은 순조로웠다. 나는 외면하려야 외면할 수 없는 쿠레시마다. 어릴 적부터 배워온 영재 교육 탓에 갑자기 던져진 현실에서도 수업 내용은 제대로 이해가 되었다. 알고보니 옆자리였던 리카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쪽지 하나를 톡 던졌다. ‘있잖아, 지금 설명하는 문제 답이 뭐야?’ 나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동글동글한 글씨체 아래에 문제 풀이를 써내려갔다. 수업은 이르게 끝났다. 아- 내일이 너희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축제구나. 일찍 끝내줄테니 마무리까지 힘내라. 그런 말을 남긴 선생님은 학생들의 환호를 받으며 교실을 나갔다. “그럼 밋치, 갈까!” “어… 어딜?” “어디긴, 동아리실이지.” 여기서의 나는 동아리까지 들었구나. 그런 얼빠진 생각을 하며 리카와 래트가 손짓하는대로 털레털레 따라갔다. 계단을 몇층 내려가 운동장을 지나쳐 강당을 향한다. 무대가 있는 넓은 강당에 이미 몇몇 사람이 와있다. 설마 동아리실이 강당이야? 스케일 크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강당 한켠에 있는 코너를 도니 문이 하나 나왔다. 비트 라이더즈. 노란색과 검은색으로 감각있게 꾸며진 로고가 문에 떡하니 붙어있다. 리카와 래트는 익숙한 듯 그 문을 열고 들어간다. 따라 들어가면 교실 정도 되는 크기의 방 안에 이미 몇몇 사람이 와 있다. 이번에는 하나같이 다 익숙한 얼굴들 뿐이라 괜히 긴장이 풀렸다. 잭, 페코, 죠노우치, 하세, 그리고. ……코우타 형. “밋치! 왔구나, 어서와!” 코우타 형이 활짝 미소를 그리며 반긴다. 그것이 눈물이 날 정도로 사랑스러워, 흐려진 눈을 가리고자 잠깐 고개를 숙였다. “자아- 축제가 내일이야. 마저 연습하러 가야지.” 분위기를 환기하듯 박수를 한번 짝. 코우타 형은 그렇게 모두를 이끌고 문 밖을 나가 강당의 무대로 우르르 향했다. 물론 감정을 금방 수습한 나도 그 무리에 껴있었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스테이지에 나서본 게 얼마나 오랜만이지. 그래도 오랜 시간동안 해왔다고 한동안 쉬었던 몸은 리듬과 스텝을 잊지 않고 있었다. 래트가 음악을 틀고 후다닥 제 자리에 뛰어올라오는 것을 시작으로 일제히 몸을 움직인다. 원, 투, 쓰리, 포…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 박자에 맞춰 착착 맞아떨어지는 안무가 기쁘다. 모두가 즐거운 얼굴로 춤을 추는 속에서 코우타 형만이 내게 눈을 마주치고, 손이 닿고, 피부가 닿고, 몸을 빙글 돌리며 합을 맞추고…… 마치 이상한 나라에 똑 떨어진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게 나쁘진 않았다. 이대로 이상한 나라에 의식이 잠겨 영영 깨어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나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아니겠지. 음악이 끝난 순간, 모든 것도 같이 끝났다. 함께 춤추던 이들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사라지지 않고 남은 것은 단 한 명. 아직도 손을 붙잡고 있는 카즈라바 코우타. 그 뿐이다. “안 가면 안될까요?” 나는 먼저 선수를 친다. 그는 내가 이렇게 매달리면 한없이 약해진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알고있다. 결국 나를 이기는건 당신이라는 것도. “밋치가 깨어나지 못하는건 싫어.” 나는 빠져나가려는 코우타 형의 손을 좀 더 꼭 쥔다. “미안해, 밋치. 내가…… 참지 못하고 널 휘말리게 했어. 모두 내 탓이야.” 강당의 무대에 덩그러니 선 두 사람. 아래를 향한 시선을 다시 들었을 때, 코우타 형의 한 쪽 눈은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저 빛이 다시금 현실을 깨닫게 한다. 그래, 안다. 알고 있었다. 이건 꿈이다. 이게 현실이라면 모두가 같은 학교에 있을 리가 없다. 언제까지고 꿈에 붙들려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형도 나도 잘 알고 있다. 이제는 막을 내려야 할 시간이다. “축제까지 즐길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어요. 그러면 형에게 데이트를 신청했을 텐데.” “……밋치. 화내지 않아?” “왜요? 이렇게라도 당신을 만나서 난 기쁜데. 코우타 형은 기쁘지 않아요?”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화를 낼까. 이 한 여름밤의 꿈은 내게 선물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해주지 않았는가. “참지 말아 주세요. 내가 그리워하는 만큼 당신도 날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해주세요.” “…….” 코우타 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여전히 당신을 붙잡고 있는 내 손에 이끌려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는 늘 이런 식으로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게 여전히 귀여웠다. “이런 데이트도 나쁘진 않지만요. 코우타 형. 나는 영원히 당신을 그리워할 테니까.” 부디 참지 말아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허물어진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내 어깨에 기대었던 코우타 형의 체온이 사라지는 것만이 아쉬웠다. * 나는 서서히 눈을 떴다. 천장은 아직도 희미한 달빛에 물들어 있다. 아직 밤이구나. 짧은 꿈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여전히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고, 당신 또한 나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올라 다시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 짧은 꿈으로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이어져 있음을 확인했으니,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