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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T/GARO 2차 창작      ★공지 읽어주세요:D

  1. [아마미야 형제] 그 고양이의 하루 2020.01.01
  2. [2기/코우가] 모래시계 2019.11.22

[아마미야 형제] 그 고양이의 하루

High&Low2020. 1. 1. 14:52


2018년 5월에 공개했던 아마미야 형제 합동 트리플지 레드레인에 수록되었던 특전을 공개합니다!

(사유: 주최님이 공개해버리셨길래 따라함)


부디 즐겁게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D





[2기/코우가] 모래시계

GARO2019. 11. 22. 10:30

몇 년 전이었더라... 예전에 글쓰기 스터디 때 썼던 코우가 단문.

2기 마계섬기 초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늦은 밤 사에지마 저택의 넓고 육중한 문이 끼익 열렸다가 금방 닫힌다. 이 시간에 들어올 만한 사람은 한 명 뿐이기 때문에 카오루와 함께 담소를 즐기던 집사 곤자는 서둘러 주인을 맞이하기 위해 현관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예상대로 바닥에 끌릴 듯 말 듯한 길이의 하얀 코트를 입은 남성의 모습이 보인다. 갓난 아이 시절부터 돌봐온 과거의 유약한 도련님. 지금은 훌륭하게 장성한 주인이다. 어서 오십시오, 코우가님.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허리를 숙여 보이는 곤자를 보며 코우가는 아주 잠깐 눈매를 느슨하게 풀었다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서 거실로 향했다. 어서와, 코우가!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튀어나온 카오루가 해맑게 인사한다. 바쁘다더니. , 오늘은 웬일로 그림이 빨리 풀리지 뭐야. 다행히 컨펌엔 늦지 않을 것 같아! 그래서 쉬러 왔지. 그런가. 잘 됐군.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그리며 그녀의 수고를 치하하는 것처럼 가녀린 어깨에 잠깐 손을 짚은 코우가는 마저 인사를 하고 거실을 가로질러 자신의 서재로 들어가 버렸다. 문 안으로 사라져 버린 코트 자락의 잔상을 바라보며 곤자와 카오루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제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코우가님이 오늘은 꽤나 피곤하신 모양 이군요, 카오루님. 으응, . 어쩌겠어요. 오늘은 쉬게 해줘야 겠는 걸요. 그리고 둘은 익숙한 것처럼 다시 홍차와 함께 담소를 시작한다.

 

 서재로 들어와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놓고, 코우가는 그 옆에 선 전신 거울을 가만히 바라본다. 참으로 재미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 남성이 서있다. 아니, 어찌 보면 뺨이 조금 헬쓱 해진 것 같기도 하다. 눈 밑이 좀 더 어두워 졌다 던지. 가슴에 새겨진 각인은 하루가 멀다 하고 목숨을 갉아먹고는 있지만 겉으로는 그리 티가 나지 않을 거라던 레오의 말이 떠오른다. 그의 말을 생각한다면 지금 코우가가 자신의 얼굴을 보며 느끼는 수척함은 기분 탓이겠지만.

 거울을 외면하고 책상 안에 들어가 있는 의자를 꺼내 앉으며 몸을 깊게 묻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이 가슴에 새겨진 각인을 어떻게 지워내야 할 것인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어떻게 라는 질문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선조 때부터 모아놓은 서재의 모든 책들을 뒤져보아도 파멸의 각인에 대한 것이라고는 시간이 되면 죽음에 이른다는 결말 밖에는 도출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이 각인에 대해 알고 계셨었을까. 가로의 이름을 이어왔던 선조들 중 어쩌면 한 명쯤은 이 각인을 받아본 적도 있지는 않았을까. 떠올려 봤지만 의미는 없었다. 어차피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 이 생명이 꺼지기 전에 하나라도 더 많은 호라를 베어내야 하는 것. 될 수 있다면 더 많이, 가능하다면 호라의 전멸을 내 손으로 이뤄내야 한다. 이것이 태어난 순간부터 기사의 숙명만을 머리와 가슴에 새긴 남자의 길이다.

 “!”

 남자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가슴을 강하게 때리는 격통에 코우가의 상체는 책상 위로 무너졌다. 점점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알 수 있었다. 저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고통을 참으며 꾹 쥐어진 주먹 옆에 세워진 작은 모래시계가 찌푸린 시야에 들어왔다. 자주색 모래알들이 빠른 속도로 아래로 쏟아져 사라져 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목숨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이미 다짐과 각오를 마친 기사에게 죽음은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

벌써, 카오루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기대할 수도 없이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기사에게 남겨진 시간은 이제 호라 퇴치 외에는 허락되지 않는다. 한 마리라도 더 많이, 더 빠르게. 굳게 닫힌 서재의 문 바깥으로 카오루의 지저귀는 웃음 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온다. ,

 시간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