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그.. 몇화더라 카프리콘 호로스콥스가 나왔던 그 편 이후로 잡고 썼던 것 같은... 제이크의 꿈이 나왔던 그 편이네요.
아주 옛날에 썼던 글이라 지금보니 민망하기만 하네여...XD...
포제 류세이x겐타로x켄고 삼각물입니다. ...긴 한데 류겐 성향이 더 강하네요. 그냥 류겐인듯.
제이크의 잠시동안의 외도에서 가장 분노하고, 또 가장 오랫동안 용서를 하지 않았던 것은 류세이였다.
다른 가면라이더 부원들이야 겐타로의 등 뒤에 숨어 주춤거리며 제이크가 래빗해치에 들어온 순간부터 이미 어느 정도 용서를 해버리고 말았겠지만 류세이는 아니었다. 같이 했던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거니와 그에게 있어 우선순위는 겐타로였기 때문에, 제이크의 배신으로 코즈믹의 힘을 잃은 겐타로가 부상을 입게된 일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물론 넉살좋게 그만 제이크를 용서하라는 겐타로의 말에 류세이 역시 결국은 넘어가버리고 말았지만, 이번에는 겐타로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화를 눌러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류세이는 그대로 겐타로를 지나쳐 제이크의 어깨를 한번 가볍게 친 후-두 번 다신 그러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있었다.- 래빗해치를 벗어나 지상으로 내려갔다.
"뭐야? 갑자기 왜 저러는거야, 류세이 녀석..."
겐타로의 의문에 덩달아 다른 부원들까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때 묵묵히 스위치를 조정하고 있던 켄고가 그들을 향해 시선을 한 번 주더니 툭 던지듯 한 마디를 꺼냈다.
"글쎄, 난 대충 알 것 같은데."
"어? 알다니, 뭘?"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향해 되돌아보는 겐타로를 보며 켄고는 작게 혀를 찼다. 어째 이리도 둔할까.
"사쿠타는 지금 네 몸상태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으니까 말야. 아마 그게 화가 난 결정적인 이유일꺼다."
"엥?"
잠시 인상을 찌푸리며 곰곰히 켄고의 말을 곱씹어보던 겐타로는 곧 작게 아, 하고 탄성을 지른 뒤 멋쩍은 듯 자신의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류세이의 뒤를 따라 뛰어나갔다.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서로를 마주보며 의문을 띄우는 남겨진 부원들을 뒤로 하고 켄고는 스위치 조정실로 들어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누굴 도와주고 있는건지..."
집을 제외하고 류세이가 올 곳이라고는 지로의 병실 뿐이다. 잠시동안의 대화에 금세 지쳐 잠든 지로를 바라보다 창 밖으로 시선을 옮기자 먹구름이 몰려 어둑어둑해진 하늘이 보였다. 비라도 한바탕 내릴 모양이다.
'우산, 가져오지 않았는데...'
아니, 차라리 비라도 맞으면 머릿 속의 답답함이 조금은 가시지 않을까.
류세이는 말없이 지로의 병실을 떠났다.
병원을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빗방울이 한 두 방울씩 떨어져내렸다. 몇 걸음 채 걷지 않아 물줄기는 금방 두꺼워져 미친 듯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소나기려나.'
방금 하늘을 바라본 탓에 눈으로 들어간 빗방울을 문질러 닦아내며 류세이는 앞을 향했다. 그 발걸음은 어딘지 맥이 없어, 터덜터덜, 그렇게 목표도 없이 걸었다.
류세이는 겐타로가 코즈믹 스위치의 힘에게서 튕겨나 지독한 내상을 입게된 것을 알고 있었다.
코즈믹 스위치는 스위치의 최종 형태이며, 한번 멈췄던 심장을 다시 움직이게 할 정도의 힘을 가졌다. 그런 스위치에게서 튕겨져 나왔으니 그 반동 또한 엄청났을 것이다. 그 상태에서 조디아츠와 싸움까지 했으니... 그렇게 빨빨 거리고 돌아다닌게 더 신기할 정도다.
오죽하겠는가, 친구가 걸린 일인데.
순간, 류세이는 뱃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옆에 있던 벽을 쾅 내리쳤다. 그 소리가 꽤나 길고 강하게 울렸다. 키사라기 겐타로는 그런 사내다. 친구의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앞밖에 볼 줄 모르는 단순무식함과 또한 친구에 대해서라면 그 어떤 사소한 버릇이라도 알고있는 세심함을 갖추고 있는. 그러나 그 자식은 그 세심함을 자기 자신에게는 쓸 줄을 전혀 몰랐다.
어째서 그리도 자신의 몸을 살피지 않는건지, 그가 행여라도 잘못되면 눈이 뒤집힐 사람들이 몇이나 있는데───
핏줄이 툭툭 불거지도록 힘이 들어간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한동안 그렇게 아래로 시선을 향한 채 화를 삭이던 류세이는 문득 헛웃음을 지으며 주먹에서 힘을 풀었다.
한 번 그를 죽였던 주제에, 그의 작은 상처에도 이렇게 분노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이 얼마나 모순되었는지.
사실은 한 번 그를 죽였기 때문에 더욱이 이럴 수 밖에 없었다. 한 번, 겐타로를 잃었으니까. 그 상실감이 얼마나 지독하고 깊었는지 아니까. 아직도 그 때의 일을 떠올리면 창자의 마디마디가 끊어지는 것만 같은 그런 단장의 괴로움이 선명하다. 그러니까 자신은 겐타로의 몸상태 하나하나를 신경쓰고 지켜줘야할 의무가 있다. 이 것이야말로 지금 내가 짊어진 책임감이다.
'류세이, 그게 정말 책임감일까?'
아까의 대화에서 한 지로의 말이 스쳐지나갔다.
'그 감정은 책임감에 따른 분노는 아닌 것 같은데. 뭔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이성을 잃을 정도로 소중한 사람이 나타났구나.'
...소중한, 사람.
'혹시- 저번에 같이 찾아왔던 그 사람이야?'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맥이 빠졌다.
하하. 실소를 터뜨리며 넓은 손으로 눈을 덮었다. 나는 이미 평범한 친구가 아닌 다른 시선으로 그 녀석을 보고있었구나.
머릿 속은 나름대로 맑아졌지만 가슴 한 켠에서는 또 다른 먹먹함이 찾아들어왔다.
보고싶다.
작게 중얼거리며 힘없이 손을 떨구고-
앞에 서있는, 자신과 마찬가지에 비에 잔뜩 젖은, 그러나 비구름을 한번에 다 물리칠 정도로 해맑은 미소를 짓고있는 겐타로를 바라봤다.
"어..."
키사라기 겐타로가 눈 앞에 서있었다.
"우산도 없이 뭐하는거야, 류세이! 감기걸린다?"
"...남말하고 있네. 너나 조심하시지."
역시나 그는 보자마자 자신보다는 상대의 안위부터 걱정하기 시작한다.
"걱정하지마."
몇걸음 더 가까이 다가온 겐타로가 류세이의 어깨 위에 손을 턱하니 올리며 말했다. 속마음을 들킨 듯 눈을 크게 뜨며 바라보는 류세이에게 씨익 웃어보인 겐타로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켄고가 메디컬 스위치로 약도 엄청나게 만들어줬고, 집에서 꼬박꼬박 챙겨먹고있다니깐. 그 약, 엄-청나게 써서 정말 먹고싶지 않지만, 내가 빨리 나아야 너도 안심을 할테니까!"
"...아... 아.. 그래..."
조금은 얼떨떨한 눈으로 바라보던 류세이는 그렇게 얼빠진 대답을 하고나서, 여전히 태양처럼 웃고있는 그 얼굴에 곧 그를 따라서 실없이 웃어버리고 말았다. 등장하자마자 자신의 분노를 온데간데 없이 녹여버리니 당해낼 수가 없었다.
"이제 화 풀렸지? 엉?"
"시끄러. 몸 챙긴다는 녀석이 비는 또 왜 맨몸으로 맞고 있는건데."
"엥, 너도 맨몸으로 맞고있으면ㅅ... 엇..!"
반박같지도 않은 반박을 늘어놓던 겐타로는 미처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별안간 뻗어온 류세이의 손에 붙잡혀 그대로 그의 품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나는 어릴 적부터 단련해온 몸이고. 비교할걸 비교해야지, 이 민간인아."
서로 홀딱 젖은 주제에 따뜻하긴 얼마나 따뜻하겠냐마는, 어깨를 단단히 감싸안은 그 팔에서는 편안함까지 느껴졌다. 그렇게 겐타로는 류세이의 어깨에 턱을 걸치고 장난스레 킥킥 웃으며 그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너도 참 지독한 녀석이구만? 친 형을 그냥 죽게 두고 말야! 조롱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미츠자네! 다급하게 소리치는 목소리도. 거리를 걷던 걸음을 멈추고, 질식할 것 같아 눈을 질끈 감았다. 호흡이 아주 잠깐 멈췄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까지 됐을까, 같은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하는 순간 나는 무너질거야. 라고 되뇌이고 되뇌이며. 그렇게 몇 번이고 생각했음에도 미츠자네는 한동안 가이무의 개리지에 찾아가지 못했다. 모두와 웃는 얼굴로 태연하게 말을 주고받는 것이 힘겨웠고 마이가 코우타의 얘길 꺼내는 것도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멈췄던 숨을 내쉬었다. 하늘엔 어쩐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버거웠던 석양빛이 차갑게 식어 가라앉고 있었다. 이 시간이면 개리지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라고 판단한 미츠자네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집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끼익. 조심스레 문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자 불이 꺼진 개리지의 안은 예상대로 텅텅 비어있다. 다행이다. 안도의 숨을 작게 내쉰 미츠자네는 안으로 들어와 탕, 탕 소리를 내며 철제 계단을 천천히 밟고 내려와 의자에 주저앉았다. 등받이에 무거운 몸을 기대며 고개를 젖혀 천장을 바라봤다. 형이 없는 집안의 냉랭한 분위기를 떠올려보면 지금 이 곳의 고요함 쪽이 훨씬 더 안정이 되었다. 가슴으로부터 올라온 작은 숨소리를 뱉어내자 느릿하게 깜박이던 눈이 감겼다.
미츠자네! 아아. 또. 목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헬헤임의 안이다. 낭떠러지의 끝에 선 타카토라가 보였다. 차마 눈을 마주칠 수 없어 미츠자네는 타카토라를 외면했다. 형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보고싶지 않았다. 차라리 그 때 형이 왜 네가 그 곳에 있느냐고 물었다면, 아니면 도와달라고 외쳤다면 이 죄책감이 덜할까 싶었다. 어서 가라. 여전히 형은 말한다. 미츠자네는 고개를 도리질치며 그 자리에서 두어 걸음 물러섰다. 네가 인류를 구하는 거다. 아냐. 그런 거창한 건 처음부터 생각지도 않았다. 그저 '쿠레시마'에 묶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밋치'로 있을 수 있는, 팀의 공간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랬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버린거야. 이런걸 바란게 아닌데. 왜, 왜, 왜.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하여 얻은 힘은 무척이나 달콤했다. 이런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어. ..하며. 그리고 힘의 댓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진실이었다. 무거웠다. 그래도 어떻게든 수습해보려 했다. 할 수 있는 만큼은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키기 위해 벌여놓은 일들은 번번히 꼬이기만 했다. 이 때부터 였을지도 모른다. 무언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고 미츠자네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랬지만 이건 내 탓이 아니잖아. "이건 다," "그 사람 때문이야." 이렇게까지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커진 것은 모두 그 사람 탓이야. 그 사람이 헛바람을 집어넣지만 않았어도... 형이 배신을 당한 것도, 그래서 죽게된 것도, 모두. 무거웠던 어깨가 조금이나마 가벼워졌다. 그 곳엔 두뇌가 명석한 쿠레시마의 차남이 아닌 16살 어린 소년이 있었다. 소년에게는 이 무거운 짐을 대신 떠넘길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다. 카즈라바, 코우타.
미츠자네. 다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울렸다. 소년은 두 손을 들어 귀를 틀어막았다. 미츠자네.
밋치.
밋-치! 그리고 미츠자네는 눈을 떴다. 형은 온데간데 없었다. 사라진 타카토라 대신 눈 앞에는 코우타가 있었다. 왜 당신이 여기에 있는걸까. 미츠자네의 흐릿한 정신은 아직 헬헤임을 헤매고 있었다. "밋치! 여기서 뭐하는거야, 이 시간까지." 뭐하냐니.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내려보는 얼굴에 웃음이 새나왔다. "...모두, 당신때문이잖아요." "밋치?"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코우타가 바닥으로 쓰러진 것은 한순간이었다. "ㅋ, 헉..!" 그리고 쓰러진 코우타의 위로 올라탄 미츠자네가 그의 목을 두 손으로 감싸 조르기 시작한 것도 역시 한순간이었다. 밑에 버둥거리는 몸과 손가락 끝에서부터 타고올라오는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왜 날 따르지 않았어요." "..밋, ㅊ, .." "전부 다 당신때문이야. 나는, 나는..!" 힘을 실어 누르자 짓눌린 소리가 터져나왔다가, 곧 끊길듯 말듯 흐려졌다. 살고자 몸부림치던 손에 손목이 붙잡혔지만 미츠자네는 까딱 한 번 하지 않았다. "나는, 당신까지 지키려고 했단 말이에요!" 손톱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 생채기가 남아 따끔거렸지만, 그래도 전혀 아프지는 않았지만 목을 죄는 손에 힘이 조금 풀렸다. 조금 숨통이 열리자 코우타가 쿨럭대며 연신 기침을 해대는 모습이 보였다. "..당신이," 뿌옇게 가려진 코우타의 눈에 담긴 미츠자네의 얼굴은 비참하게도 일그러져 있었다. 미츠자네는 고개를 숙여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었다. 어린 아이가 투정하듯 원망하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날 배신하면 안되는거잖아요, 코우타 씨..."